우리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 세계에서 꽃을 피우는 한국인들! 우리가 박지성 골인에 열광하는 것과 김연아의 승리에 기뻐하는 것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내 안에 그들과 같은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랑스럽고 기쁘고 내 일 같다. 여기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성장하고 이곳에서 공부했지만 현재 세계에서 눈부신 커리어를 쌓은 이들이 있다. 유엔 직원으로, 사진작가로, 양커로, 셰프로, 모델로... 그들의 열정, 그들의 날갯짓이 우리는 자랑스럽다.
쇼에 설 때마다 팔색조처럼 다른 마스크와 분위기를 보여주는 김다울.
세계 패션계의 러브콜을 받는 뮤즈로 등극하다
>> 김다울
1989년생. 초등학교 1학년 때 싱가포르로 건너가서 중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모델로 데뷔한 것은 13세 때. 현재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는 톱모델로 급부상했다.
올봄 케이블 TV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 I am a Model > 3편에 출연, 패션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끌기 시작한 패션 모델 김다울. 방송에서 보여진 그녀는 팀 버튼 영화의 주인공처럼 다소 그로테스크하고도 사랑스러운 마스크와 완벽하고 호리호리한 몸매, 엉뚱해 보이는 ‘4차원스러운’ 정신세계를 지닌 껑충하고 귀여운 소녀였다. 이 독특한 매력에 사람들은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단순히 ‘독특하다’라는 수식어로 설명하기엔 그녀는 이미 너무나 유명해졌다. 방송이 나가기 전인 지난해 9월, 10월 그녀의 스케줄은 뉴욕, 밀라노, 파리 컬렉션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쇼에 서는 것으로 꽉 차 있었다. 현재까지도 2008 F/W 시즌의 각종 패션쇼와 패션위크, <싱글즈>, 와의 커버 촬영, 광고 촬영 등의 정신없는 스케줄에 파묻혀 미국과 런던, 한국을 오가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혜박과 한혜진에 이어 김다울은 한국 패션계가 낳은 세계적인 모델로 까다로운 패션계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고 있는 스타로 급부상했다.
마르틴 마르지엘라로 데뷔한 후 세계 패션의 중심으로!
구호 쇼와 잡지 커버 촬영 때문에 뉴욕에서 잠깐 짬을 내어 서울로 온 그녀는 최근 섰던 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알렉산더 맥퀸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맥퀸 쇼는 이자벨라 블로우를 추모하는 컬렉션이었는데, 날개와 새가 콘셉트였어요. 런웨이 인스톨레이션이 너무 멋졌죠. 하지만 가장 감동적이었던 쇼는 예전에 김원경 언니와 갔던 ‘안토니오 마리스’쇼였어요. 내가 워킹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언니가 워킹할 때도 박수 소리가 퍼졌어요. 두 명의 한국 모델을 위한 박수라니. 대단하죠!”
그녀는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노력’이었다고 잘라 말한다. “물론 약간의 운도 따랐어요.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되어 있었고, 지금도 스스로를 개발하는 데 늘 신경을 쓰죠.” 그녀는 마르틴 마르지엘라 쇼로 처음 해외 무대에서 데뷔했다. 2006년 파리 컬렉션에서였다. “평소에 찾아서 입을 정도로 좋아하던 브랜드가 절 찾아줬다고 생각하니 놀랍고도 신기했어요. 게다가 얼굴 공개도 잘 안 하기로 유명한 디자이너를 직접 만나 쇼 준비를 하고, 한 마디로 얼떨떨한 상태에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날들을 보냈죠.” 이후 그녀는 거센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듯 세계 패션계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뉴욕부터 시작해 런던, 밀라노, 파리까지 톱 컬렉션에 줄줄이 섰고 샤넬과 드리스 반 노튼, 이세이 미야케 등 빅쇼의 뮤즈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공허하다’라는 의외의 소감을 털어놓는다. “이상해요. 제 감정이 왜 이런지 잘 모르겠어요. 쇼를 서기 전에는 너무 떨리고 하고 나면 뭔가 이루어냈다라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 막상은 허탈한 기분이 드니까 우울하죠.”
피 튀기는 호러를 사랑하게 된 4차원 소녀
이런 기분은 그녀의 4차원적인 개성에 어느 정도 기인하는 듯하다. 그녀는 여느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보고 있노라면 ‘역시 유전자가 다르다’란 생각이 일만큼 완벽한 팔등신의 신체 조건을 지니고 있다. 우아하게 솟은 광대뼈와 도자기처럼 매끈한 피부는 메이크업을 받지 않아도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난다. 하지만 남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타고난 신체 조건과 미모에 그녀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군다. 특히 카메라 앞에서는 그 점이 더욱 도드라져서, 그녀가 등장한 화보들은 엉뚱하고 기괴하며 때론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잇백을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다루듯 무심하게 머리에 뒤집어 쓰거나 길고 새까만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온통 가린 채 그 위에 안경을 쓰는 연출은 현장에서 그녀가 내키는 대로 해본 것들. 잠을 자다가 꾼 ‘악몽’들에 영감을 받아 직접 그린 그림들(전시회도 열었다!)의 분위기도 이런 그녀의 행동과 닮아 있다. 또 블로그와 미니홈피에 일기처럼 끄적여놓은 글들에는 꿈에서 본 피와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들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어 마치 한 편의 호러 영화를 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생생하게 피가 퍽퍽 튀는 것까지 다 느껴지니까, 처음에는 무서워서 꿈에서 깨어나면 울곤 했어요. 수면제를 먹고 잠들 정도로 일상생활에 방해가 됐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꿈들과 친구하기로 했어요.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코미디 같아요.” 그녀의 취향은 확실히 굳어졌다. 가장 재밌있게 읽은 책으로 <아메리칸 사이코>를 꼽는 걸 보면! “이 책은 반은 패션에 관한 이야기, 반은 전기톱 살인이 벌어지는 이야기라 제겐 너무나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혼자서 놀면서 배운 게 더 많아요
그녀의 이력 중 가장 독특한 부분은 중학교 3학년 시절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치른 점이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싱가포르에서 살았던 그녀는 당시 영국인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막 시작한 모델 일에 적응하랴, 학교 생활에 적응하랴 힘든 시절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선생님들도 엄청 엄하고 아이들도 정말 못됐었죠. 모델 일에 적응하는 것보다 그 학교에 적응하는 게 훨씬, 아니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어요.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서 규칙과 질서를 강요하는데 왜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아웃사이더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그러다 몸이 안 좋아서 계속 학교를 쉬었는데, 어느 날 ‘왜 가’라고 생각하고 자퇴해버렸어요. 그리고 계속 혼자서 놀고, 책 읽고, 영화 보고 일했죠. 그때 배운 것들이 학교에서 몇 년간 배운 것보다 더 많아요.” 이후 그녀는 혼자서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합격했다. 물론 그 시험이 미래를 보장한다고는 손톱만큼도 믿지 않았다. “이런 시스템을 혐오해요! 하지만 “부모님 말씀대로 ‘만약을 대비하는 보험에 들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녀는 여전히 김다울!
모델로 데뷔하고 나서 세계적인 무대에 서기까지 가장 중요한 자질은 끈기였다. 알고 보면 모델계는 끈기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도발하는 세계다. 처음 한국에서 활동할 때는 ‘너희 나라로 가버려’란 말을 수차례 들을 만큼 외면과 거부의 연속이었다. 상처 받거나 답답해서 울었던 적도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이 단단해졌죠. 피팅 때 떨어져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쇼에 서지 않더라도 초초해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다행히도 유명해진 후터는 더 이상 끈기를 발휘할 일이 없어져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4차원 소녀, 성공하기 이전과 똑같은 김다울이다. 스티븐 마이첼이나 데이비드 심스 같은 세계적인 패션 포토그래퍼들과 작업하는 일과는 다른 세계를 꿈꾸는. 지금은 애인과 자전거 타는 일이 가장 좋고, 곧 출간될 사진집 덕분에 설렌다는 그녀의 꿈은 소박하고도 역시나 엉뚱한 면이 있다. “꿈이요? 맛있는 거 먹고 가끔 근사한 선물도 살 수 있고, 주변에 열 받고 답답한 시스템들을 조금씩 파괴하며 남들이랑 상관없이 조용하고 여유롭게 사는 인생이죠.”
1 뉴욕에서 진행된 <싱글즈>와의 커버 촬영을 위해 직접 옷들을 체크하는 중.
2 케이블 TV < I am a model> 출연 후 생긴 그녀의 팬들은 스트레이트한 앞머리가 눈을 가릴 정도로 이마를 덮은 스타일을 김다울의 최고의 매력으로 꼽는다. 하지만 이마를 시원하게 드러낸 모습도 예쁘기만 하다.
3 커버 촬영 전 최종 점검 중.
4 무심하게 쳐다보는 매력적인 눈빛.
<daum.net>